두 달 간의 여행 끝 귀국
2025.4.30.
남은 현금 50,000루피가 남아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맥주를 한 병 마셨다. 술도 한잔 마셨고 어제 무리한 일정으로 깊은 숙면을 취할 줄 알았는데,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4시 30분에 체크인할 예정으로 짐도 다 싸고 잤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면 안 되는데라고 잠을 청하려다 보기하고 일어나 그간의 여정을 정리했다.
새벽 4시에 그랩을 잡기 어려우면 어쩌나 했는데 저렴한 요금으로 바로 잡혔고 전혀 정체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발리 도착한 날 그랩 사기꾼들 한데 당한 게 맞다고 확신하고, 그랩에 신고를 해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루트를 찾을 수 없었다. 하긴 그런 루트가 있다면 택시기사들이 가만 두지 않았겠지.
새벽시간이라 공항이 한산하다. 이코노미 줄도 대기 없이 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과 이미그레이션을 마치고 들어오니,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에서 본 출구 쇼핑몰이 새롭게 정비했다는 공항에도 연출돼 있었다. 마치 미로처럼 ㄹ자 모양으로 돌아 나오니 게이트가 보인다. 인도네시아 만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모아놓은 마일리지를 이용해 싱가포르 항공 비즈니스 좌석을 발권했다. 5성급 항공사라는 자랑에 걸맞게 라운지나 기내서비스는 정말 훌륭했다. 설국열차에 나오는 등급칸처럼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다소 찔리기는 했지만, 이번만큼은 실컷 즐기기로 했다. 미리 주문한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라운지에서도 최소한의 식사를 했다. 그런데 서빙된 기내식의 음식은 기대만큼 훌륭하지는 않았다.
마일리지로 비즈니스 좌석을 잡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발리에서 싱가포르로 간다음 마닐라를 거쳐 인천에 도착하는 경로로 예매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6시간이면 도착하는 직항이나 한 번의 경유노선은 마일리지 좌석 자체가 없었다. 비즈니스 세 번 타는 일종의 체험관광 24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마닐라에서 환승하는 과정에서 엄청남 어려움을 겪었다. 보통 환승을 할 때는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싱가포르 항공은 3 터미널에 도착해서 아시아나항공을 타려면 1 터미널로 이동해야 한다. 국제선 환승을 하게 되면 입국 수속을 밟지 않고 터미널을 연결하는 교통편이 있는데, 여기 마닐라 국제공항은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필리핀 입국수속을 마친 다음 개인 화물도 찾아서 무료셔틀을 타고 다시 체크인 발권을 하고, 출국 수속을 밟고 절차를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싱가포르 항공에서 고용한 직원이 절차를 안내해 주고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다가 입국을 하려면 전자 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필리핀 유심도 없는 상태에서 공항 무료 와이파이는 속도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비싼 국제로밍요금을 이용해서 입국심사를 마쳤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데 역시나 택시 사기꾼이 수작을 부린다. 1 터미널 가는 셔틀 없다고 해서 확 짜증을 내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더니 조용히 도망치듯 사라진다.
마닐라 1 터미널은 대부분의 외국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터미널이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도 이곳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곳의 상황이 심각하다. 마땅한 대기시설이나 휴게실이 거의 없어서 비좁은 구석의자에 앉아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아시아나 항공권 발권을 마치고 출국심사를 하려고 하니 비즈니스 좌석은 옆으로 뺀다. 출국심사 보안검사를 승무원들이 하는 곳에서 거의 대기 없이 처리해 준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공항시스템이 가장 허술하고 시설도 최고로 낙후한 곳이 필리핀 마닐라 공항이었다. 반면 싱가포르 공항은 입출국수속을 하는데 비즈니스 좌석에 대한 우대가 아예 없었다.
공항 라운지에서 3시간가량을 대기했다. 아침부터 라운지와 기내식으로 먹은 것이 많아서 속도 좋지 않아서 간단하게 음료만 마셨다. 밀린 일기를 정리하다 보니 3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마닐라 1 터미널은 가장 오래된 건물이어서 그런지 게이트 앞 공간이 너무 작아서 이동하려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아시아나에 탑승하니 기내 방송과 승무원들의 서빙이 한국어로 이루어진다. 2달간 막혀있던 귀가 뚫리는 기분이랄까. 11시 50분 출발하는 비행기라 탑승하자마자 식사를 준다. 식사를 하지 않고 잠을 잘까도 생각했는데, 기내식 체험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잠깐 졸다가 일어나 식사를 했다.
아시아나 비행기는 싱가포르 항공기와 비교하니 많이 낡았다. 곧 사라질 항공사라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여기저기 훼손된 장비도 눈에 띈다. 베개와 담요도 오래 사용한 흔적이 고소란이 남아있었다. 이사 갈 집 방치하듯 관리가 엉성하다. 그런데 기내식은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싱가포르 항공 보다 더 좋았다. 싱가포르 항공은 고기도 질기고 디플레이트도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 후 깊이 잠들어 버렸다. 2시간 자고 일어나니 비행기는 인천 상공을 날고 있었다. 두 달간 건강하게 큰 탈 한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혼자 의사소통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경험치를 쌓은 것 같다.
내일부터는 옥수수를 심어야 한다.